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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포 굿>은 선한 마녀와 사악한 마녀를 단순하게 나누기 어려운 이유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엘파바가 왜 결국 스스로 ‘위키드’라는 이름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피예로와 글린다의 선택은 어떤 의미인지 영화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피예로가 사랑한 엘파바의 진짜 모습
<위키드: 포 굿>에서 흥미롭게 느껴졌던 부분 중 하나는 엘파바와 피예로의 사랑입니다. 처음부터 두 사람이 서로에게 깊은 사랑을 느꼈던 것은 아닙니다. 전작에서 피예로는 엘파바에게 호감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 감정이 훨씬 분명한 사랑으로 발전합니다. 피예로는 엘파바의 외모가 아니라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인지 알아가면서 마음을 빼앗긴 인물처럼 보입니다. 특히 엘파바가 동물들이 억압받는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은 피예로가 그녀를 바라보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영화의 공식 설정에서도 피예로는 글린다와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엘파바와 다시 얽히게 되고, 결국 그의 선택은 오즈 전체의 사건을 크게 바꾸게 됩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조금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엘파바는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그 외모 때문에 가족에게조차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피예로는 엘파바의 초록 피부를 사랑의 장애물로 생각하지 않고 그녀의 행동과 마음을 바라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외모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피예로의 선택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위키드>라는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일지도 모릅니다. 오즈에서는 누가 아름답고 누가 이상한지를 사람들이 정해버리고, 그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까지 구분합니다. 엘파바가 초록색 피부라는 이유만으로 이상한 사람처럼 취급되는 것도 같은 구조입니다. 그래서 피예로가 엘파바의 외모보다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는 것은 단순한 연애 이야기를 넘어 작품이 계속 보여주는 편견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국 피예로가 사랑한 것은 초록색 피부를 가진 마녀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엘파바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피예로에게 위기가 닥치면서 엘파바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피예로가 대마법사와 그의 세력에게 붙잡히고 위험에 처하자 엘파바는 더 이상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이때 등장하는 노래가 ‘No Good Deed’입니다. 엘파바가 지금까지 해온 선행이 오히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험하게 만들었다고 느끼면서 분노를 폭발시키는 장면입니다. 배우 신시아 에리보 역시 이 장면을 엘파바가 모든 것을 잃고 슬픔과 고통을 폭발시키는 순간으로 설명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오히려 엘파바가 더 현실적인 인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도 끝까지 선량한 모습만 유지한다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엘파바의 ‘흑화’는 갑자기 악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좋은 일을 하려고 했던 사람이 결국 분노와 절망을 감당하지 못한 결과처럼 보였습니다.
엘파바와 글린다를 갈라놓은 진짜 이유
<위키드: 포 굿>을 보기 전까지 저는 엘파바와 글린다를 조금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포스터만 봤을 때는 핑크색 옷을 입은 마녀와 초록색 마녀가 서로 대립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전작을 본 뒤에는 둘이 친구가 되었지만 각자의 신념 때문에 잠시 멀어진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후속작까지 보고 나니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을 갈라놓은 것은 서로에 대한 미움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위치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식 줄거리에서도 <위키드: 포 굿>은 엘파바와 글린다가 서로 멀어진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엘파바는 오즈의 숲에 숨어 동물들의 자유를 위해 싸우면서 마법사를 폭로하려 하고, 글린다는 에메랄드 시티에서 ‘선함’의 상징이 되어 대중 앞에 서게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오즈에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제가 특히 흥미롭게 본 부분은 글린다 역시 완전히 선한 인물이라고만 말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글린다는 엘파바와 친구였고 그녀를 걱정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가진 지위와 대중의 사랑을 완전히 포기하지도 못합니다. 반대로 엘파바 역시 처음에는 누구보다 정의로운 일을 하려고 했지만 피예로가 위험해지면서 자신의 분노를 숨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핑크색이라고 선하고 초록색이라고 악하다는 식의 구분이 계속 흔들립니다. 공식 설정에서도 글린다는 오즈에서 ‘선함’의 상징으로 살아가면서도 엘파바와 떨어져 있는 것을 괴로워하고, 두 사람을 다시 화해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엘파바가 글린다에게 자신과 함께하지 않더라도 진실을 알고 있어주기를 바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선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사람이 서로를 배신했다기보다, 같은 곳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에 더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엘파바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오즈의 규칙 밖으로 나가고, 글린다는 그 안에 남아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합니다. 둘 중 한 사람을 무조건 선하고 다른 한 사람을 나쁘다고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위키드>의 출발점과도 연결됩니다. 작품의 원작은 그레고리 머과이어가 1995년에 발표한 소설 <Wicked: The Life and Times of the Wicked Witch of the West>이며, 이 소설은 L.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를 다른 관점에서 다시 바라본 이야기입니다. 이후 스티븐 슈워츠가 음악과 작사를 맡고 위니 홀즈먼이 대본을 쓴 뮤지컬로 발전했고, 영화는 이 뮤지컬을 두 편으로 나누어 제작했습니다. <위키드: 포 굿>은 그중 두 번째 작품으로 뮤지컬의 2막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확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가 단순히 ‘착한 마녀와 나쁜 마녀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사악한 서쪽 마녀’라는 이야기를 다른 방향에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영화와 뮤지컬로 달라진 위키드의 느낌
저는 <위키드>라는 작품을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 국내에서 공연한 뮤지컬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위키드: 포 굿>을 볼 때는 이미 전체적인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전작 영화에서 1막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먼저 보고, 뮤지컬을 통해 뒤의 이야기를 알게 된 뒤 후속작을 본 순서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순서가 꽤 재미있었습니다. 영화만 보고 후속작을 기다렸다면 엘파바와 글린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한 마음이 컸을 텐데, 저는 뮤지컬을 먼저 보면서 결말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에서는 그 이야기가 어떻게 표현될지를 비교하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와 뮤지컬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느꼈습니다. 뮤지컬은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배우들이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가지만, 영화에서는 오즈라는 거대한 세계를 훨씬 다양한 장소와 화면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특히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인물 가까이 다가가 표정이나 작은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엘파바와 글린다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기가 편했습니다. 반면 뮤지컬에서는 한 장면 안에 여러 인물이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에 어디를 바라봐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영화로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뮤지컬을 볼 때 인물의 관계를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었지만, 아무 정보 없이 처음 관람했다면 한 번만으로는 모든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화 제작진도 두 편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확장한 이유를 단순히 상영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NBCUniversal의 제작 관련 설명에 따르면 원래 뮤지컬의 두 막을 한 편의 영화에 모두 담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고, 결국 각각을 하나의 영화로 만들면서 인물들의 관계와 이야기를 더 충분히 보여주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실제로 <위키드: 포 굿>은 뮤지컬 2막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엘파바와 글린다가 다시 관계를 마주하는 과정을 영화에 맞게 확장했습니다. 그래서 뮤지컬을 먼저 본 저에게도 영화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엘파바의 ‘흑화’였습니다. 처음에는 정의로운 엘파바가 왜 결국 사악한 마녀라는 이름을 받아들이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엘파바도 결국 감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계속 좋은 일을 했는데도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위험해지고, 사랑하는 피예로까지 위기에 처한다면 화가 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No Good Deed’는 바로 그 변화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신시아 에리보 역시 이 노래를 엘파바가 슬픔과 고통을 폭발시키는 순간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가 엘파바의 착한 모습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엘파바는 착한 사람이지만 언제나 착한 선택만 하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글린다 역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위치와 현실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점 때문에 두 사람이 오히려 더 사람답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위키드: 포 굿>은 누가 착하고 누가 나쁜지를 결정하는 이야기라기보다, 한 사람의 모습을 한쪽 면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엘파바와 피예로가 오즈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는, 이제는 정말 다른 곳에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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